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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삼하 12:16-25)


[성전꽃예술 해설: 3월은 삼일절을기념하여 나라를위해 목숨을 기꺼이 내놓으시고 하나님께 피눈물로기도했던 선조들의 나라사랑과 믿음에 감사하며 그 뜻을본받게 하소서~]
[성전꽃예술 해설: 3월은 삼일절을기념하여 나라를위해 목숨을 기꺼이 내놓으시고 하나님께 피눈물로기도했던 선조들의 나라사랑과 믿음에 감사하며 그 뜻을본받게 하소서~]

 

기독교 신앙에서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것이 “은혜”라는 말입니다. “은혜”를 헬라어로 ‘카리스’라고 하는데, ‘뭔가를 받기에는 완전히 부족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분에 넘치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은혜는 하나님이 자격 없는 자들에게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부어지는가? 그게 또 그렇지 않습니다. 출 33:19절을 보면,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출20:6절,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히 4:16절에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베푸신다고 했습니다. 이때 “때를 따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유카이론’은 ‘때를 잘 맞춘, 적절한’이란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때를 맞춰서 적절한 도움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은 겸손하게 은혜를 구하는 마음이어야 합니다. 겸손한 사람이 하나님을 찾습니다. 자기로서는 도무지 안된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절대적으로 구하는 자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은혜를 구했습니다. 나단 선지자의 예언대로 하나님이 밧세바와 낳은 아이를 쳐서 병들게 하셨습니다. 다윗은 자기의 충성스러운 신하였던 우리아의 아내와 간음죄를 저질렀습니다. 그게 들통날까 두려워서, 우리아를 전장에서 죽음에 이르게 했습니다. 요압 장군에게 “우리아가 가장 앞장서서 싸우게 하라”는 명령을 내려서, 고의적으로 죽게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는 우리아의 아내를 자기의 아내로 삼아 버렸습니다. 이 일을 하나님이 가볍게 보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나단 선지자”를 보내서, 다윗의 죄를 깨닫게 하셨습니다. 선지자의 말을 듣고, 다윗이 즉각적으로 하나님께 회개했습니다. 그러자 선지자가 하나님께서 다윗의 죄를 용서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일로 말미암아 당신이 낳은 아이가 반드시 죽으리이다”(삼하 12:14) 라고 했다. 그리고 밧세바가 낳은 아이를 치신 것이다.

 

그러자 다윗은  16절에서 “다윗이 그 아이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되 다윗이 금식하 고 안에 들어가서 밤새도록 땅에 엎드렸으니”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보면, 다윗이 세 가지를 했습니다. 첫째는, “아이를 위해 하나님께 간구했다”고 했습니다. “간구했다”는 것은 ‘하나님을 찾고, 은혜를 구했다’는 뜻입니다. 다윗은 당시 최고의 권력과 부를 이룬 사람입니다. 그러면 아들이 중병에 걸렸을 때, 왕궁 의사를 비롯한 여러 의사들을 수소문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람을 찾지 않고,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왜? 아들의 중병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한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두 번째 “금식”입니다. 왜 금식한 것인가요? 구약 시대의 금식은 죄를 회개할 때 하는 행위 중에 하나였습니다. 다윗은 자기의 생명을 하나님께 맡기고, 심판을 구한 것입니다.  셋째는 “밤새도록 땅에 엎드렸다”고 했습니다. 자기를 다 내려놓고 밤새도록 낮은 자가 되어서 엎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높이는 자리에 누워서 쾌락과 만족을 구하는 것을 기뻐하시지 않으시고 자기를 낮춘 자리에서, 자기를 부인하고 땅에 엎드린 자를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언제나 그와 함께 하셨습니다. 다윗이 밧세바와 범죄하는 순간에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하나님과 함께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아서 실패한 것이 아니라 다윗이 하나님과 함께하지 않아서 실패한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회개하지 않고, 정죄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 지도자들의 가장 큰 문제는 성도들을 회개의 자리로 이끌지 않고, 정죄의 자리로 이끌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회개하지 않고, 성도가 회개하지 않는데, 어떻게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 낮아진 자, 겸손하게 엎드린 자를 기쁘게 받으십니다. 다윗의 모습이 바로 그것입니다. 다윗의 탁월함은 회개에 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사는 자가 되기를 구했던 것입니다. 다윗은 자기 안에 있는 어둠을 깨닫고, 자기의 무력함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자기의 어둠을 깨닫고, 자기의 무력함, 아무것도 아님을 보지 못하면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할 수 없다. 즉,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 자리로 나가지 못합니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울 때 얼마나 단순했습니까? 자기의 전투력이나 전략을 세우고 나가지 않았습니다. 평소처럼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믿음으로 나갔습니다. 골리앗에게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삼상 17:45)라고 했습니다. 너는 “칼, 창, 단창”을 사용한다. ‘전략, 전술, 무기’를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어떻게 한다고 했습니까?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삼상 17:45)고 했습니다. 여호사밧이 마온 연합군과 싸울 때 얼마나 단순했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내일 그들 을 맞서 나가라”(대하 20:17)했다. 그러면서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대하 20:17)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씀 하나”를 붙잡고 “찬양”을 부르면서 내려가서 승리했습니다. 믿음이 이렇습니다. 단순함을 요구합니다. 그냥 “믿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 14:1절에서 “너희 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다윗이 그런 것입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은혜를 구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다 받아들였습니다. 다윗은 간절히 기도했지만, 아이는 하나님의 뜻대로 죽었습니다. 그때 다윗은 하나님의 응답에 순종합니다. 기도는 내가 하는 것이지만, 응답은 하나님께 있다는 진리를 인정한 것입니다. 아이가 죽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다윗은 절망에 몸부림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몸을 정결하게 하고 의복을 갈아 입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경배하고, 돌아와서 음식을 먹었습니다. 신하들은 다윗의 행동이 이상해서 물었습니다. 21절, “아이가 살았을 때에는 그를 위하여 금식하고 우시더니 죽은 후에는 일어나서 잡수시니 이 일이 어찌 됨이니이까” 아이가 살았을 때도 그렇게 슬퍼했다면, 죽은 지금은 더욱 슬퍼해야 하는 것이 정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다윗이 대답했습니다. 22절과 23절을 보라. “이르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살려 주실는지 누가 알까 생각함이었거니와 지금은 죽었으니 어찌 금식하랴 내가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 나는 그에게로 가려니와 그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다윗은 “하나님이 데려가신 아이를 내가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고 했습니다.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미 말씀을 주신 하나 님이 말씀대로 역사하신 것입니다.


다윗은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했습니다. 그러니까 24절에서, “다윗이 그의 아내 밧세바를 위로하고 그에게 들어가 그와 동침하였더니 그가 아들을 낳으매 그의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니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다윗이 그의 아내를 위로했다는 것입니다. 이전에 삼하 11장에서 다윗은 자기의 권력과 힘으로 밧세바를 굴복시키고 동침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위로하고 동침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회개하고 은혜받은 사람의 모습입니다. 자기의 힘과 권력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위로의 말과 행동을 사용한다. 왜 그런가? 자기가 은혜로 용서받은 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아들을 새롭게 주셨습니다. 그가 솔로몬입니다. 그 아들을 하나님은 “여디디야”라고 했습니다. ‘여호와께 사랑받는 자’란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사랑하신 이유가? 그가 회개의 열매, 기도의 열매였기 때문입니다. 밧세바의 경우에는 “존재”의 변화를 경험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성경에서, 삼하 12장 이전까지 밧세바는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로 불렸습니다. 삼하 12:15절에서도, “우리아의 아내가 다윗에게 낳은 아이를 여호 와께서 치시니 심히 앓으니라”고 했습니다. 그녀의 정체성은 언제나 우리아의 아내였습니다. 삼하 12:24절에서, 비로소 “다윗의 아내”로 불려지고 있습니다. 그녀는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에서, 이스라엘의 왕 다윗의 아 내가 되었습니다. 비로소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그분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에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나기를 원하십니까? 교회에 부흥이 임하기를 기대하십니까? 나라가 변하고, 세상이 아름다워지고, 가정이 복되기를 소망하십니까? 하나님은 이미 여러분에게 은혜를 베풀기 원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는 자가 되면 됩니다. 겸손하게 말씀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에 의지해서 은혜를 구하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 교만했던 자아가 있다면, 자기를 부정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하십시요. 그러면 잘못된 선택도 뒤집어서 선한 것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에게 임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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