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그냥 믿어지면, 그것이 축복이다.(요 20:24-29)
부활이 중요한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사망을 이긴 사건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사망이 최종 승리자가 아니라 부활이 최종 승리자가 되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고전 15:20)는 것이다.
“아! 목사님, 예수님께서 나인성 과부의 죽었던 아들을 살려내셨지 않습니까? 마르다와 마리아의 오빠였던 나사로도 죽은지 나흘이 지났다가 다시 살아나지 않았습니까? 회당장 야이로의 딸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무덤들이 열리면서 자던 성도들이 일어났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예수님께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라고 할 수 있습니까?” 이렇게 말하는 분들도 있다. 그런데 그들은 영생이라는 ‘아이오니오스 조에’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기 때문이다.
영생이란 “영원히 가치있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인성 과부의 아들이나 나사로,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나 무덤에서 다시 살아난 사람들은 진정한 부활을 이룬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살아났다가 다시 죽었기 때문이다. 진정한 부활은 다시 살아서 영원히 사는 것이다. 다시 죽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진정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는 것이다. 그러니까 성도는 부활과 영생에 대한 산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그러면 이제, 본문으로 들어가 제자들의 모습을 살펴보자.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을 때 두려움에 빠져 있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찾아오셨다. 그리고는 그들에게 부활의 모습을 보여주셨다. 그러니까 제자들이 가지고 있던 두려움이 기쁨으로 변화되었다. 그런데 예수님이 부활하여 나타나신 자리에 도마가 없었다.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지 못했고, 부활을 의심했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면서 기뻐했는데, 도마는 여전히 부활의 주님과 만나지 못해서 의심에 빠져 있었다.
본문은 의심에 빠졌던 도마가 예수님과 만나서 부활신앙을 갖게 되는 장면을 증거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 대목을 보면서 세 가지 교훈을 얻게 된다.
1. 마음 밭이 살아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제자들은 여전히 두려움 속에 있었다. 요 20:19절,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그렇게 굳게 문을 닫아걸고 있는 제자들을 향해서, 예수님이 찾아오셨다. 그리고는 그들 가운데 서서 말씀하신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 20:19) 그리고 예수님이 손과 옆구리를 보이신다. 요 20:20절,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손과 옆구리는 고통과 죽음의 흔적이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통과 죽음의 흔적을 보고 기뻐했다는 것이다. 상처를 보면 마음이 아파야 하는데, 그들은 예수님의 상처를 보고 오히려 기뻐했다. 이 말씀이 무엇을 증거하려고 하는 것인가? 죽음이 생명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두려움이 기쁨으로 변화되었다는 것이다. 죽음과 고통의 흔적이 생명과 평안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증거하려는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제자들은 바로 그것을 경험했다. 그런데 도마는 마음이 죽어있다. 예수님은 이미 부활하셨는데, 그의 마음에서는 아직까지 죽어있었다. 이런 분이 있다. 예수님은 이미 부활하셔서 지금도 살아계시는데, 부활신앙이 없는 사람이 있다. 겉으로는 예수님의 제자이지만, 마음에는 예수님이 죽어있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에게는 기쁨도 없고, 감사도 소망도 없다. 여전히 죄인처럼 갇혀서 살기 때문에 늘 불안하고, 마음의 평안을 누리지 못한다. 구원의 감격과 기쁨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에 불평하고 원망하는 경우가 많다.
도마가 그랬다.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고 했을 때, 기쁨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에게는 여전히 예수님이 죽어 있는 분이었기 때문이다. 마음 밭이 죽어 있으면 어떤 씨앗도 열매를 맺을 수 없다. 말씀이 떨어져도 은혜에 젖어 들어가지 못한다. 마음이 중요하다. 인생도 마음이 중요하고, 예배도 마음이 중요하다. 마음이 태도를 결정하고, 태도가 행동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마음밭 이 소망으로 살아있어야 한다. 믿음으로, 고맙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있어야 한다.
2. 신앙의 흔적을 회복할 수 있어야 한다.
예수님은 도마를 자신의 흔적으로 초대하신다. 자기의 옆구리로 도마를 초대하셔서, 과거에 있었던 십자가의 흔적을 경험하게 하신다. 의심하던 도마에게 예수님이 다시 나타나셨다. 그리고 그에게 예수님이 고통당하셨던 흔적을 보여주신다. 27절,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예수님이 보여주시는 흔적은 과거에 십자가에서 겪었던 고통의 흔적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치유의 흔적이기도 하다. 못 자국과 창 자국은 또한 죽음의 흔적이다. 그러나 동시에 부활과 영생의 흔적이기도 하다.
예수님은 그런 영적인 흔적, 신앙의 흔적을 보여주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믿음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27절) 바로 이것이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믿는 자가 되기를 원하신다. 우리에게도 영적인 흔적들이 있다. 과거에 받은 은혜가 있다. 신앙에 혼돈이 찾아들 때, 바로 그것을 끄집어내서 다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세상을 살다보면 신앙이 흔들릴 때가 있고, 의심이 밀려올 때가 있다. 그 때 우리는 과거에 받았던 은혜를 기억해 낼 수 있어야 한다. 죽다가 살아난 은혜, 눈물과 탄식 가운데 받은 하나님의 위로를 기억해 내야 한다.
인생에 강한 폭풍이 불어올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것이 하나님께서 일으키시는 기적의 출발이 될 수도 있다. 성도는 그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과거에 우리를 이끌어 오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오늘도 우리를 이끌어 가시는 분이 하나님인 것을 믿어야 한다.
3. 말씀이 그냥 믿어지면, 그것이 축복이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가 8일 뒤에, 도마가 제자들과 함께 있을 때 다시 그들에게 나타나셨다. 그 8일 동안, 도마가 부활하신 예수님과 만나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을까?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8일 동안 도마는 어떻게 지냈을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두려움에 떨던 제자들이 평화를 되찾았다. 아마도 도마는 그런 제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당황하고 놀랐을지도 모른다. 한편으로는, 자기가 했던 말 때문에 예수님께 회개했을지도 모른다. 또 한편으로는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면 다시 나타나실 것이라는 생각도 했을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도마는 생각했을 것이다. 예수님이 다시 나타나시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말씀을 들었는데, 가만히 자기를 되돌아보니까 주님을 믿지 못했다. 자기가 했던 말을 예수님이 들으신다면 얼마나 실망하실까? 도마는 이미 대답을 준비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도마는 자기 마음을 예수님께 드려야겠다고, 자기의 삶을 주님께 드려야겠다고, 이미 결정했을 것이다.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28절) 그렇지만 그의 최종적인 고백은 예수님과 만난 뒤에 이루어졌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너는 보았기 때문에 믿게 되었다. 그러나 보지 않았어도 믿는 사람은 복이 있다.”
사람들은 주님을 직접 만나고, 놀라운 기적을 경험하고, 환상을 보고, 방언과 신유의 은사를 행하고 등등 그것을 보고 싶어할 때가 있다. 그렇게 보고, 확인해야 믿어질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신다. 그런 것들을 보지 않았는데도 믿음을 가지려는 사람이 복 받은 사람이다. 여러분은 어떠신가? 여러분은 말씀이 그냥 믿어지시는가? 그러면 축복인 것이다. 그런 분들이 진짜 있다. 말씀이 그냥 잘 믿어지는 것이다. 그러면 그것이 진짜 축복이다.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요 20:29) 보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사랑을 믿고, 능력을 믿으면 복된 삶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여러분은 말씀이 떨어질 때, 보이지 않는 세계를 믿고 순종하며 승리하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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