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을 세우면 뜻이 보이기 시작한다.(창 21:1-8)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그에 맞게 사는 법이 있다. 하나님의 은혜 아래 사는 인생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 경건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성도의 삶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믿음을 세우면, 하나님의 뜻이 보이기 시작하고 은혜가 깨달아지기 시작한다. 성도란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1. 하나님의 말씀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본문에서는 사라가 임신을 하고, 이삭을 낳는 이야기가 나온다. 5절,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이 그에게 태어날 때에 백 세라” 백 세에 아들을 낳았다는 것은 아브라함과 사라의 능력을 낳은 아들이 아니라는 뜻이다. 오늘 본문의 핵심 구절이 바로 1절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라는 구절이다. 이 말씀이 반복적으로 사용되었다. 사람의 뜻대로 된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에는 능력이 있고 힘이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한다”(히 4:12)고 했다. 하나님의 말씀이 채워지면 영혼에 생기를 북돋아 준다고 했다. 영혼에 생기가 북돋아 지니까 우둔하던 사람이 지혜롭게 된다. 그 다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채워지면 마음을 기쁘게 하고, 눈을 밝게 해준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영혼에 생기를 주고, 지혜를 더하고, 마음을 기쁘게 하고, 눈을 밝게 하신다는 것이다. 이 말씀은 시 19편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이다. 한 마디로 인생을 온전히 살아가게 하는 원리가 말씀에 있는 것이다.
경건은 다른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믿는 것이 경건이다. 그러면 끝나는 것이다. 경건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순종이 안 될 수가 없다. 진리와 만나지 않을 수가 없다. 성경에 인생의 모든 길과 해답이 다 나와 있다. 그러니까 성경을 읽고 배우고, 묵상하고, 탐구하시기 바란다. 다른 곳에서 길을 찾지 말고, 말씀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2. 모든 일에는 하나님의 때가 있다.
말씀을 믿고 살아갈 때, 우리 삶에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되어 있다. 나쁜 환경이 건강한 환경으로 돌아오고, 세상의 악한 것들이 하나님의 선하신 것들로 변화된다. 어둠과 절망이 빛과 소망으로 변화되고, 싸움과 다툼이 평화와 기쁨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일에는 하나님이 정하시는 때가 있다.
오늘 말씀에서도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후사를 주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다. 2절을 보면, “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라고 했다. 여기서 중요한 표현이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라는 구절이다. ‘시기’라고 번역이 된 히브리어 ‘모에드’는 ‘특별하게 정해진 시간’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계속해서 약속의 후손에 대해 말씀하셨다. 그런데 그 약속의 성취라는 것이 정해진 시기가 있었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시기가 무르익었을 때, 비로소 약속된 응답을 허락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는 약속의 응답이 올 때까지 기다릴 줄 아는 지혜와 인내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말씀하고 약속하신 일에는 모두 하나님의 때가 있기 때문이다. 성도는 하나님의 약속이 하나님께서 보실 때 가장 정확한 때에 이루어질 것을 믿어야 한다. 그래서 겸비한 마음과 신실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서 때를 기다려야 한다. 하나님께서 언약을 맺으시면, 그것은 반드시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 그러니까 신앙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이루실 때를 기다리며 기도해야 한다.
3. 받은 은혜 안에 의미와 목적을 넣어야 한다.
이제, 성도가 은혜를 받았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겠나? 받은 은혜에 의미와 목적을 채워 넣어야 한다. 4절에 보면, 아브라함은 태어난 이삭에게 할례를 행했다.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고 말씀대로 따라서 그렇게 했다. 그는 언약을 기억하고 자기 아들에게 인생의 의미를 새겨 넣었다. 그리고 8절에 보면, 아이가 젖을 뗀 후에 잔치를 했다고 했다. 보통 아이들이 1년 동안 젖을 먹으니까, 젖을 뗀 후에 잔치를 했다는 말은 ‘돌잔치’를 했다는 뜻이다. 이스마엘 때에는 잔치했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이삭 때에는 그렇게 했다. 무슨 말인가? 이삭이라는 아이의 생애에 의미와 목적을 부여해주었다는 뜻이다.
느헤미야 시대에 예루살렘 백성들을 생각해 보면, 그들의 삶은 매일이 의미없는 생의 반복이었다. 그런데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총독으로 부임해서, 그들에게 의미와 목적을 깨닫게 해준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기 시작한다. 수십 년 동안 답보상태에 있었던 예루살렘 성벽재건 사업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52일 만에 완성시켜 버린다. 성벽을 재건할 때의 모습을 보면, 각 사람들이 자기 집 앞의 부분을 담당한다. 자기 집 앞쪽으로 있는 성벽을 자기들이 세우는 것이다. 그러니까 성벽에 의미가 있다. 열심히 세워 나간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분량으로 일했던 것은 아니다. 능력과 힘이 있으면 조금 더 맡아서 했다. 그러나 자기 집 앞은 자기가 세웠다. 자기 집은 자기가 지키도록 한 것이다. 이렇게 의미와 목적을 부여해 주니까, 모든 사람이 자기 분량 안에서 열심을 냈다. 우리가 그렇다. 모두가 똑같은 시간을 사는 것이 아니다. 교회에 와서 지내는 것도 그렇다. 어떤 분은 예배만 겨우 드릴 정도밖에 시간이 안 된다. 어떤 분은 하루 종일 교회에서 보낼 수 있다. 누구나 똑같은 시간을 지내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시간을 똑같이 보내자는 말이 아니다. 자기가 보내는 시간에 의미와 목적을 분명히 하자는 것이다. 한 시간 예배를 드리더라도, 거기에 의미와 목적을 집어넣으라는 것이다. 그래서 가치있는 시간으로 삼으라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가치 있는 시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시간으로 보내자는 것이다. 그러면 된다. 그렇게 의미와 목적이 새겨지기 시작하면 예루살렘 성벽이 재건되었던 것처럼 교회도 가정도 인생도 재건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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