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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을 증명하지 말고, 믿음을 증명하라.(출 19:7-15)


말씀을 듣고 순종을 다짐한 백성들


시내산으로 올라간 모세가 약속의 말씀을 받아서 내려왔습니다. 약속의 말씀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언약을 지키면, 하나님의 소유가 되고, 제사장 나라가 되고, 거룩한 백성이 될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산에서 내려온 모세가 이 말씀을 장로들에게 진술했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이 순종할 것을 약속합니다. 8절을 보면, “백성이 일제히 응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라고 했습니다. 명령하실 말씀의 내용이 무엇인지 아직 정확하게 모릅니다. 그런데, 그냥 다 행하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것이 이런 패턴입니다. “너희가 내 말을 듣고 잘 지키면, 내가 너희를 축복하겠다. 그러니까 내 말을 잘 듣고 지킬 것이냐? 그렇다고 약속하면, 내가 무슨 말을 지켜야 하는지 너희에게 자세하게 이야기하겠다. 그러니까 약속하겠느냐?” 우리가 사람들과 어떤 약속을 할 때, 그럴 때가 있습니다. “당신이 내 말을 다 지키겠다고 약속하면, 당신에게 무엇을 해 주겠다. 내 말을 다 지키겠느냐?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면, 어떤 말을 지켜야 하는지 그 다음으로 말을 하겠다.” 이런 식입니다. 아직 구체적인 내용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이 약속이 협박이나 두려움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약속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과 언약을 체결하려고 하십니다. 이때 “언약”을 받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언약의 말씀을 받으려면, 내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게 “성결”입니다. “거룩”입니다. 10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백성에게로 가서 오늘과 내일 그들을 성결하게 하며 그들에게 옷을 빨게 하고”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성결하게 합니다.

만남이 이루어져야 목적을 성취한다.


출애굽기 19장에는 “만남, 명령, 허락”이라는 복합적인 주제들이 깔려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시내산으로 인도하신 것은, 여기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체결하기 위해서입니다. 언약이 체결되기 위해서는 우선 언약의 당사자들끼리 직접적인 만남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시내산으로 강림하셔서, 이스라엘 백성과 만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만남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어떤 목적을 가지고 방문하면, 목적에 합당한 만남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려면, 그 사람을 직접 만나야 합니다. 여러분이 법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가정하겠습니다. 그래서 변호사를 만나러 사무실로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변호사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목적지로 갔다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만나는 것입니다. 어떤 질병에 걸렸다고 생각해 보십시요. 그래서 병원에 갔는데, 거기서 의사를 만나지 못하면 어떻게 됩니까? 병원에 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나를 치료할 수 있는 의사를 만나는 것입니다. 그래야 고칠 수 있습니다.

목적지에 갔으면 만남이 이루어지고, 만남의 목적을 이뤄야 합니다. 학생이 학교를 갔는데 선 생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배움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영업사원이 영업을 목적으로 방문했는데,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영업의 목적을 이루지 못합니다. 만남이 중요합니다. 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와 있는데, 교회에 오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 목적을 이뤄야 합니다. 교회에 오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여기서 여러 사람을 만나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그게 목적이 되어서 온 사람은 세상 말로 “허탕을 친 것”입니다.

질병을 가지고 고치려는 사람이 병원에 가는 것이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거기서 여러 사람들, 자기와 같은 아픔을 가진 여러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허탕을 친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의사를 만나야 합니다. 그래서 나를 치료하는 과정으로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오는 것만을 목적으로 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거기서 오랜 만에 반가운 사람을 만나고, 목사님을 만나고, 성가대 찬송하는 음악을 듣고, 예식에 참여하는 것이 목적이 되면 안 됩니다. 그러면, 허탕을 치고 돌아가게 됩니다.

예배가 목적이고, 하나님의 임재체험이 목적이다.


여러분이 교회에 오는 가장 우선적인 목적은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배 중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임재와 만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이후로 광야 길을 걸어오면서, 하나님의 임재가 없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걸어왔습니다. 그런데 언약을 체결하시려고 시내산이라는 특별한 곳에서, 특별한 임재와 만나게 하신 것입니다.

예배가 그런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계속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었지만, “언약을 위해서”는 특별한 곳에서 특별한 만남이 필요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의 일생도 주님의 임재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지만, 매 주마다 특별한 곳에서 특별한 만남이 있어야 합니다. 그게 예배입니다. 성도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예배하는 시간들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체험해야 합니다.

출 19:16절을 보면, “셋째 날 아침에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매우 크게 들리니 진중에 있는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고 했습니다. “빽빽한 구름”을 말할 때 사용한 히브리어가 ‘카베드’입니다. 여러분에게 익숙한 말입니다. ‘카베드’는 ‘무겁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말할 때, ‘카베드’를 사용하지 않습니까? 구름이 빽빽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게 임하셨습니다.

거기에 “나팔 소리가 크게 들렸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나팔 소리”을 양각 나팔인 “쇼파르”로 말하고 있습니다. “쇼파르”는 두 가지 의미에서 중요한데, 첫째는 전쟁이 끝났을 때 부는 나팔이라는 것이고, 둘째는 희년(즉, 자유와 해방)을 선포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무엇을 선언하고 있습니까? 전쟁이 끝나고 평화로운 시간이 왔다는 것입니다. 애굽에게 당했던 모든 괴로움과 압제가 완전히 끝났다고 선언하시는 “나팔 소리”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희년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완전한 자유와 해방을 누리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성도가 예배할 때, 이런 영적인 체험이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여러분이 예배하는 시간들 속에서, 살아계신 하나님과 특별한 만남이 있어야 합니다. 그 임재 안에서, 자유와 해방을 선포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셔야 합니다. “세상에서 억눌리고 있는 모든 압제와 괴로움과 고난에서 너를 해방한다. 너를 성령으로 충만하게 해서, 나의 안에서 자유와 기쁨을 누리도록 하겠다.”라고 하시는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런 영적인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배하는 시간에 여러분을 괴롭히는 모든 인생의 문제에서 자유함을 얻으셔야 합니다.


실력이 아니라, 믿음을 증명하라.


그러면 관점이 달라지게 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확신이 생기기 때문에, 어떤 문제라도 이기게 하실 것이라는 소망이 생기는 것입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여러분이 예배를 드리기 전에 가지고 있던 문제들이 예배가 끝난 뒤에도 여전히 남아 있을지 모릅니다. 아니, 대부분은 그냥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관점은 달라지는 것입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얼마든지 넘어가게 하실 것이라는 관점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토미 테니”라는 분은 “예배는 성도의 관점을 달라지게 한다”고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실력을 요구하니까 자꾸 실력을 증명하려는 것이 습관이 되었습니다. 이 세상이 실력을 요구합니다. 그러니까 신자도 어디를 가든지 자기 실력을 자랑하고 증명하려고 합니다. 교회 일도 실력으로 하려고 합니다. 실력을 키운다고 주일에 예배도 잊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실력을 키울 수는 있는 있을지 몰라도, 그 실력에 걸맞는 행복을 이룰 수는 없습니다. 실력에 걸맞는 성공이 아니라 행복이라고 했습니다. 실력에 걸맞는 성공을 이룰 수도 있지만, 축복된 삶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오늘 말씀 제목처럼 성도는 “실력을 증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믿음을 증명하면 됩니다.” 믿음을 증명하면, 그 믿음에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선언했던 것처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는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믿음을 증명하는 성도가 되십시요.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을 가장 우선적으로 붙잡고 의지하는 성도가 되십시요. 그러면, 하나님이 그 믿음에 실력을 주십니다. 믿음이 증명되면 여러분 안에 계신 하나님이 능력과 권세로, 지혜와 지식으로 역사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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