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7장 말씀을 우리가 읽어 나갈 때, 우리에게 도전하는 것이 겸손입니다. 교만할 수 없다는 사실, 율법과 은혜의 사이에 있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된다라는 사실을 우리라고 깨닫게 하는 게 로마서 7장 말씀입니다. 바울이 자기 안을 들여다보니까 자기 안에 선한 게 없다는 것입니다. 18절에서 내 속 곧 내 육신의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서 이제 육신이라고 하는 게 헬라어로 이제 사르키라고 하는 말입니다. 사르키코스라고 하는 말은 이 육신에 속해 있다라는 뜻인데, 이 육신이라고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그냥 우리의 살과 어떤 뼈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육신은 타락한 본성을 상징하는 말입니다. 타락한 본성이 극복되지 않은 상태라는 것입니다.
바울의 고민은 선을 행하려고 하는 마음이 있는데 선이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선을 행하고는 싶은데 선이 행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 안에 선을 행해야지라고 하는 마음은 있는데 선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고린도전서 3장 1절에서, 두 부류의 사람이 있는데 하나는 신령한 사람이 있고, 하나는 육신에 속한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신령한 사람은성령의 사람입니다. 성령의 사람은 성령에 딱 붙잡힌 사람이 변화된 속사람이 변화된 사람이 있고, 예수님 믿는 사람들 중에서도 그렇게 속사람이 변화되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르키코스’ 육신 탈락한 본성이 극복되지 않은 상태에 있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백성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속 사람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고민이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들으면 마음에 잘 담아야 합니다. 아모스 5장 4절, 너희는 나를 찾아라 그리하면 살리라 6절,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이처럼 찾으면 살리라입니다. 이사야 55장 3절 말씀에서는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원히 살리라. 이처럼 하나님 말씀하시것을 잘 귀를 기울여서 들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살리라 입니다. 시편 37편 27절에서는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또 영원히 살리라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렇게 이제 말씀이 우리에게 지시하는 바가 있는데 이 말씀을 잘 지키면서 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탈락한 본성 때문에 그 말씀 율법에 따라 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율법이 우리에게 들어와서 우리를 조명하면 우리가 죄인이라고 하는 그 진리가 드러나게 된단 말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율법이 참 신령하다고 한 것입니다.
15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이렇게 말한단 말입니다. 내 안에 선을 행하려고 하는 마음이 있는데 이게 무너져 내리는 겁니다. 쉽게 말해서 마음은 하나님 말씀 잘 듣기를 원하는 것인데 그걸 방해하는 게 있다면, 원하는 것을 행하지 않고 미워하는 것을 행한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선을 행하고 싶죠. 봉사하고 싶은 마음이 있고 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그 마음은 있지만 선은 없다는 것입니다.
20절을 보시면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오.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래요. 그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죄가 있어요. 그 죄가 자꾸 작동한단 말입니다. 그래서 조금만 방심하면 죄가 튀어 나옵니다. 기도를 많이 하고 금식 기도하고 성경을 막 열심히 읽어도 그걸 암송하고 그래도 넘어지고 실족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을 붙잡을 때, 하나님의 성령의 의지가 여러분을 붙잡을 때에 여러분이 거기에 합당한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겸손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하나님을 의지할 때 우리는 모든 죄와 사망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앤드류 머레이 목사님이 말한 것처럼 '죽을 만큼 겸손해야 되는 게 성도'입니다. 매일 순간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구하는 성도로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토저 목사님이 그랬잖아요. '설교하는 말도 공허한 말로 그냥 지나갈 수 있다'. 그래서 말씀을 마음에 담아야 되고 이 말씀을 붙잡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말씀이 공허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 은혜를 구하고 하나님 임재 의식 속에서 살아야됩니다. 라틴어로 코람데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님 앞에서 낮아지고 겸손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5장 6절 말씀처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겸손하라. 겸손하라.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은혜를 구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 은혜를 우리가 구하고 찾고 그 은혜를 누리는 성도로 살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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