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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의 역할, 그리고 은혜에 이르는 길(롬 7:1-13).


[강림절기 2주]

오늘 본문 말씀에서 바울은 율법의 역할, 즉 율법의 기능, 율법의 목적에 대한 이야기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뭐냐 단순하게 말하면 율법이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법이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십계명입니다. 십계명이 율법에 들어가고 그 다음에 레위기에서 주신 도덕법, 정결법, 제사법, 절기법 이런 것들이 이제 다 율법에 들어갑니다. 율법을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하나님이 약속했는 말씀 이게 단순하게 말하는 율법의 어떤 개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논리가 가능해지냐면 하나님의 약속에 있는 말씀이니까 이 말씀을 잘 따라가면 복을 받는 자가 되고 이 말씀을 따라가지 못하면 심판받는 자가 되는 이런 논리가 이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7절 말씀을 보면 율법의 역할이 나옵니다.‘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롬7:7)’ 율법이 지금 죄를 알게 한다는 것이고 법이 없을 때는 죄인지 아닌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은 죄를 알게 해줍니다. 바울은 이에 대해 율법은 초등교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지만 죄를 미워하십니다. 그래서 심판받게 되는 죄된 행위를 하나님이 용서하시고 영생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용서의 크기와 무게감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율법으로 죄를 조명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습니다.

     

  9절 말씀은‘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롬7:9)’ 율법을 깨닫지 못하게 되면 내가 판단의 기준이 되면 내가 미워하고 정죄하게 됩니다. 말씀을 깨닫게 되면 죄를 깨닫고 죄가 죽게 됩니다. 내가 죽었도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차이가 있습니다. 결국 롬 6-7장에서는 죄는 사망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혼인관계로 질문을 합니다. 남편이 죽고 또 새로운 남편을 만나도 죽고 또 죽게 되다가 진짜 남편이 누가 되느냐 질문을 합니다. 얽매인 여자는 남편으로부터 자유로운 자가 됩니다. 여기서 남편은 율법을 의미합니다. 율법이 죽은 자가 됐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율법이 죽은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에서 벗어나 그리스도 예수님과 그리스도의 열매를 맺은 자로 살게 되었다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여러분의 진짜는 율법입니까? 그리스도입니까?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에게 붙잡힌 자가 되어야 합니다.


  내 힘을 의지해서만 살려고 하면은 그 사람은 율법을 여전히 남편으로 삼고 산다는 증거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거나 하나님께 기도해서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생각을 계속 앞세우며 살고, 내 생각이 중요하고, 내 의지가 중요하고, 이걸 자꾸 앞세우면서 살려고 한다면 여전히 율법을 남편으로 삼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내 판단이 기준 되어 나는 옳고 나만 온전히 살고 있지라고 생각한다면 율법을 남편으로 삼고 있다고 하는 증거입니다. 그렇게 노력해서 열매를 맺으려 한다면 그것은 행복이 아니라 자기만족이기에 반드시 행복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율법에 얽매여 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오히려 나를 부인하는 사람, 나로서는 안 되고 하나님으로서 되는 것이로구나, 나를 부인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다는 것입니다. 즉, 상한 심령이 됐을 때에 하나님 은혜가 우리 안으로 들어온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조명받아서 순종하는 성도가 되십시오. 우리의 문제는 말씀에 조명 받으려고 하지 않고 내 판단으로 그거를 조명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나라고 하는 나는 율법적 자아입니다. 이 율법적 자아에서 죽어지는 자가 구원의 길, 은혜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율법 안에 사는 사람에게는 구원이 없습니다. 율법 안에서 죽어야 합니다. 내가 판단하고 내가 보고 내가 옳고 내가 하는 행동의 기준이 내가 되면 내 안에서 무슨 옳고 그름이 있고 내 안에서 어떤 선과 악을 나누는 율법적인 자아가 있는 것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그러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율법을 통해서 보고 판단하고 그렇게 나가는 사람은 부활을 얻어도 하나님께 기쁨이 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말씀의 기준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래서 자기를 결별하는 게 첫 번째 죽음이라면 두 번째 죽음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입니다. 그러려면 십자가를 발아래 깔아두지 말고 머리 위로 두어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판단이 말씀 위에 있지 말고 말씀 아래에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율법적으로 억지로 하면 안됩니다. 열심히 하다가 포기하게 됩니다. 지치게 됩니다. 그러나 자기 십자가를 지고 들어 올려서 하나님의 말씀을 올리게 되면 말씀이 나를 저절로 이끌어 줍니다. 이렇게 될 때 은혜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자연스러워지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하나님 나라의 말씀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말씀이 기준이 되고, 그 말씀으로 살아내는 사람이 될 때에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기쁨이 된다는 것를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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