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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은 하나님께 있으니, 내게 이르소서(창 40:1-8).

최종 수정일: 1월 15일


[성전 꽃예술 해설: 하나님 지금은 세계 전쟁과 탄핵 정국으로 한치앞을 내다볼 수 없는 위기에 처해있는  대한민국을 지켜주시고  상식과 법치 정의가 회복되게 하옵소서]

요셉은 온유한 사람이었습니다. 혈기를 부리지 않았습니다. 종으로 팔려갈 때도, 감옥의 종살이를 할때에도 요셉은 혈기를 부리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꿈의 사람이었습니다. 큰 꿈을 보았습니다. 창세기 37장에서 곡식단이 절하는 꿈을 꾸고 해와 달과 별이 절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요셉은 부모와 형제들을 다스리고 미래에 자신에게 절하는 것으로 해석을 하였습니다. 야곱은 요셉을 특별히 사랑하였지만 꿈의 해석을 꾸짖었습니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을 때에 성경을 자세히 보면, 야곱은 절하지 않았습니다. 해돠 달과 별은 아버지와 어머니와 형제들로 해석을 했었는데, 어머니 라헬도 세상을 떠난 뒤였습니다. 그러면 처음 해석한 것과 다른 것입니다.

     

요셉의 성공에만 포커스를 맞추면 꿈의 해석이 왜곡되고 잘못된 해석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꿈은 잘못될 수 없습니다. 요셉의 꿈은 하나님의 큰 그림의 계시였습니다. 묵시적 비전이었습니다. 그리고 언약의 성취였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사역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메시야 이시다 라는 것입니다. 요셉은 구원사역을 본 것입니다.

     

메시야가 이후에 유다지파를 통해서 나옵니다. 창37에서 첫 번째 꾼 꿈은 11개 지파가 1개 지파에게 절하는 것입니다. 요셉지파가 아니라 유다지파였다는 것입니다. 유다지파는 유다가 묶어낸 지파였습니다. 창38장에서 창39장을 보면 요셉의 이야기에 유다가 묶여 있습니다. 넷째아들인 유다는 젊은 시절을 회개하고 야곱을 떠납니다. 세상사람들과 친구가 됩니다. 세속적인 친구들과 사귀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셉을 팔자고 했던 유다가 요셉의 이야기에 동조해주는 자가 됩니다. 아버지를 설득하는 유다입니다. 곡식단을 묶는 모습을 보면 유다는 베냐민 지파를 묶어두려고 합니다. 나머지 형제는 자기의 곡식단을 묶습니다. 사무엘서에서도 유다와 베냐민과 레위지파가 같이 갑니다. 남유다에서도 유다와 베냐민이 함께 묶여집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신비입니다. 요셉의 꿈이 엇갈린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두 번째 꾼 꿈은 유다지파의 메시야에게 절하는 메타포를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온 세상이 엎드려 절하는 것이었습니다.

     

요셉이 감옥에서 꿈을 해석해줄 때 나타난 것은 모든 주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창40:8을 보면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이를 해석할 자가 없도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하건대 내게 이르소서’ 해석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내게 말하면 해석을 할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요셉과 같이 온유한 자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온유한 자로 산다는 것은 순종하는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순종하는 자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말슴에 설득당하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말씀이 이끄시는대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시간안에서 하나님이 이끄시는 삶을 살아가시는 복된 성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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